아이폰 구입으로 의도하지 않은 사과빠(...)의 길로 접어든 나. 아이팟, 아이폰, 맥미니에 이어 결국 아이패드2까지 지르고 말았다.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이것저것 지르게 되는 게 정말 많아지는 느낌. 따지고 보면 Beats 헤드폰/이어폰을 지르게 만든 원흉도 아이폰이었고 -_-; 그래도 각 라인별로 큰건 하나씩 보유했으니 당분간은 지를 일 없겠지. 

 확실히 아이폰을 쓰다 보면 큰 화면의 포터블 기기에 대한 욕구가 상승한다. 아이패드의 화면은 그런 측면에서 상당히 적절한 크기이다. 처음 발표시 이 크기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던 사람도 많았지만 실제 들고 써본 바로는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갤럭시 탭의 7인치가 오히려 정말 어중간한 크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7인치는 7인치 나름의 효용성과 소비 포지션이 있겠지만, 휴대성 중시의 휴대폰과 큰 화면을 가진 웹서핑/멀티미디어 전용 장비로서의 타블렛 디바이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의 장점도 완벽하게 취하지 못하는 어정쩡함은 지울 수 없다. 아마 그걸 알기에 삼성도 갤탭의 화면 사이즈를 자꾸 키우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아이패드에 대한 욕구가 계속 상승하던 중 아이패드 2의 발표는 결정적으로 내게 불을 당겼다. 높아진 사양, 길어진 배터리 수명, 얇아진 두께와 가벼워진 무게 등 모든 것이 좋아졌음에도 전 모델과 같은 가격이라니. 발표 이후 미국 현지 구매대행까지 고려하면서 발매를 고대하던 내게, 애플은 4월 중 발매 확정이라는 소식으로 화답했고 결국 나는 아침 8시 반에 강남 프리스비로 뛰어가, 200명을 넘는 구매 대기 줄에 2시간을 서서 기다려 결국 손에 들고야 만 것이다.
 

 열심히 아이폰에서 구매한 어플들을 옮겨담고 폴더 정리를 한 뒤 마이그레이션까지 마친 모습. 뿌듯하다 -ㅂ-

 이제 하루밖에 안 되었지만 사용해보며 느낀 점들을 좀 적어 보겠다.


1. "그거 그냥 아이폰 크게 만든 것 아냐?"

 아이패드를 사는 사람/사려는 사람/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맞다. 특별히 기능적으로 뭔가 다른 것도 아무것도 없고, 결국 아이폰을 크게 잡아 늘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아이패드라는 물건이다.

 그러나 그 "크기의 차이"는, 막상 자신의 손으로 잡고 만지며 사용해보면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로 다가온다. B5 사이즈 노트만한 화면에 펼쳐지는 1024x768 해상도의 화면은 영화든 영상이든 사진이든 웹페이지든 무엇이든 충분한 여유를 갖고 시원하게 펼쳐 보여준다. 이런 화면으로 어디서든 웹서핑과 멀티미디어를 감상할 수 있는 수단이, 지금까지는 노트북밖에 없었다. 본체를 펼치고 전원을 켜고 OS가 부팅되기를 기다리고, 펼쳐든 본체를 잡고 터치패드를 긁어서 마우스 포인터를 이동시켜 더블클릭을 해야 했다. 그래도 밖에서, 카페나 지하철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이기에 모두들 그 불편함을 참고 썼다.

 아이패드는 언제든 홈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화면이 뜬다.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한번 눌러주면 바로 브라우저와 사진과 영상이 돌아간다. 스마트폰이 이런 세상을 이미 열어줬지만, 휴대폰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쾌적한 화면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아이폰과 같은 시스템에 큰 화면을 가진 아이패드가 제 몫을 찾아 자리매김하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아이패드가 아무리 휴대성이 좋다고 한들 주머니 속에 항상 넣고 다닐 수 있는 휴대폰에 비할 수는 없다. 아이패드는 "큰 화면을 가진기기"로서의 포지션 위에서 최대한의 휴대성을 추구했다. 이 설계 의도에 공감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물론 사용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충분히 성공적인 어프로치로 보인다.


2. 게임 개발자로서 너무나 매력적인 기기. 그러나...

 아이패드 2는 스펙상으로도 상당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 아이폰과 함께 차세대 휴대 게임 플랫폼으로서 점점 입지를 공고히 해 나가고있는 중이다. 언리얼 엔진의 iOS 버전 발표와 그것을 사용한 Epic Citadel 데모, 그리고 많은 게이머들을 경악하게 했던 Infinity Blade의 발매는 게임 플랫폼으로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자리매김에 큰 무게감을 부여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촉망받는 유망한 플랫폼임은 이미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도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이패드가 게임을 즐기는 데에 매력적인 기기로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런 스펙의 업그레이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2001년에 처음 모바일 게임 회사에 들어가, 4색 흑백 액정에 나오는 도트 그림을 만들어본 이래로, 나에겐 한가지 버릇이 생겼다. 휴대폰이든 MP3P든 뭐든 간에 액정 디스플레이가 존재하는 기기라면가 직접 만든 그림을 넣어서 그 색감과 화면의 느낌을 살펴보는 것이다.

 모든 액정 디스플레이는 각각 그 고유의 느낌이 존재한다. 단지 액정 표시방식에 의한 색감이나 픽셀의 크기에 따른 차이 외에도, 도트 피치의 차이나 백라이트의 질감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그 기기, 그리고 그 액정만의 독특한 화면 느낌이 만들어진다. PC에서 보는 원본 컨텐츠의 느낌과 액정 화면에 띄워서 그 화면을 보는 느낌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아이폰 3Gs도 이러한 액정의 느낌이 굉장히 고급스러운 축에 속하며, 레티나 디스플레이로 포터블 기기 해상도의 상식을 파괴한 아이폰 4는 액정 자체의 느낌에 고해상도에서 오는 섬세함까지 더해져 거의 원본을 120% 이상 미화시켜 주는 효과를 낸다. 아이폰용 게임이나 컨텐츠를 만들어 본 디자이너들이라면 자신의 작업물이 PC 모니터상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 아이폰 4에 띄운 화면이 훨씬 보기좋게 나와서 놀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는 화면의 크기가 커진데다 1024x768이라는 해상도로 인해 아이폰 4의 레티나 디스플레이같은 극도의 섬세한 맛은 없지만, 충분히 사용자를 만족시킬 정도의 훌륭한 화면빨을 제공한다. 

 다만 너무나 아쉬운 것은 이러한 훌륭한 스펙이 갖추어진 기기에서 아직도 충분한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구입하자마자 한/미/일 3개국의 앱스토어와 각종 아이패드 관련 사이트들을 뒤져봤지만, 아이패드를 산 사용자가 기대할 만한 퀄리티의 게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이 아이폰용으로 만들어진 게임을 아이패드의 자체 확대출력 기능을 이용해 2배로 키워서 플레이할 수 있게끔 돼 있을 뿐이다.

 아마추어나 개인 개발자 - 주로 그래픽 인력을 구하지 못한 프로그래머 - 들이 만드는 졸라맨류의 게임을 제쳐놓고 보면, 퍼즐과 디펜스 장르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꺼내들고 플레이할 수 있는 아이폰에서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장르이지만, 아이패드와 같이 휴대성을 좀더 희생하고 큰 화면을 구현한 기기에서는 존재 의의가 약해진다. 적어도 아이패드를 구입한 게이머들이라면 좀 더 멋지고 본격적인 게임을 원할 것이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모바일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iOS용 게임을 만들고 있고 해외 마켓에의 런칭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빌의 제노니아와 같은 작품은 이미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게끔 되었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캡처기능을 이용한 다이렉트 캡처샷. 아이패드의 확대 기능을 이용해 꽉 차게 출력.


 확대 기능을 안 쓰면 이렇게 나온다. 작은 화면도 그렇지만 이렇게 출력되면 저 가상 버튼들을 터치하는 것도 아주 난감해진다.


 화면을 디카로 찍은 사진
 

 원래부터도 320x240 기준의 국내 피처폰용으로 만들어진 그래픽 소스를 아이폰의 480x320으로 잡아늘려 보여주는 방식인데다, 아이패드 해상도에 맞추는 작업도 되어 있지 않아 다시금 2배 확대 기능을 사용해야 겨우 화면에 꽉 차게 플레이할 수 있게 된다. 위에서 보듯, 마치 옛날 도스 게임을 요즘 PC에서 즐기는 것처럼 엄청나게 튀는 도트의 화면을 봐야 한다.

 그나마도 아이패드는 하드웨어 자체적으로 아이폰용 어플을 2배로 늘려 보여주는 기능을 지원하니 이 정도이지만, 안드로이드 폰은 자체적으로도 해상도가 모두 제각각인데다 7인치, 8.9인치 등등 여러가지로 나오는 갤럭시탭에서 호환시키려면 그래픽 리소스의 해상도 결정에 더욱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그 특성상 확대/축소에 취약한 도트 그래픽은 고해상도 기기에서 좋은 퀄리티를 내기가 정말 어렵다. 리터칭을 하거나 아예 고해상도용으로 다시 그리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많은 작업량을 감수해야 하며 자잘한 해상도 변경에도 작업 자체를 항상 재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대다수의 한국 모바일 게임사들이 피처폰 시대의 도트 그래픽 기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 4나 아이패드와 같은 고해상도 기기에 걸맞는 그래픽 솔루션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아예 3D 인력을 영입해 풀 3D 게임을 만드는 방법을 취하는 회사도 있지만, 모바일 게임을 만들던 회사에서 MMORPG의 3D 인력을 영입한다고 갑자기 충분한 퀄리티의 게임이 쑥 나오지는 않는다. 아이패드의 스펙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PC나 콘솔만큼 충분한 퍼포먼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적인 3D의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트 이상의 2D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작업하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도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고려한 결과, 브러시 작업으로 리소스를 만들고 처음부터 1280x720의 HD 해상도를 상정해 작업해 오고 있는데, 아이폰 4에 이어 아이패드에서도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아이패드에서 캡처한 이미지.


 아이패드 화면의 디카 촬영.

 새로운 기기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기기를 위해 지불한 가격만큼의 새로움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아이패드는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스펙과 잠재력을 지닌 기기이며, 컨텐츠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그에 걸맞는 좋은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애플 앱스토어의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분포 덕분에 섣불리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모두가 주저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주목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차별화된 컨텐츠를 내놓을 적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아이패드의 큰 화면이 보여주는 좋은 스펙에 비해 그 매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적절한 컨텐츠의 부재가 너무나도 아쉽다.

 ...나도 얼른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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