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나온 G모사 도쿄스튜디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디자이너 T씨가 흥미있는 정보를 알려줬다. Patreon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창작활동을 후원해준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곧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이 사이트를 이용해 창작활동을 하면서 먹고살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신기한 이야기라, 사이트를 좀 둘러봤다.

 


http://www.patreon.com



 창작활동을 "후원"하는 사이트이다보니 저 이름은 혹시 '패트런'이라고 읽는 건가? 싶었는데 후원자라는 뜻의 패트런은 patron이라고 쓰는 모양이니 아마 저건 적당히 고쳐서 독자적인 이름을 만든 모양이다. 물론 뉘앙스야 따왔겠지만. 패트리언이라고 읽으면 되려나.


 이미 아마추어나 인디 창작 활동을 후원하는 사이트는 유명한 킥스타터를 비롯해 이런저런 사이트들이 있는데, 그런 기존의 후원 사이트들과 이 '패트리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완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프로젝트 완수'라는 큰 덩어리를 목표로 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그림이라면 한 장당 얼마씩을 받거나 하는 식으로 목표 기준을 세밀하고 보다 부담없게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per month'이다. 이것은 자신의 창작 활동에 대해 '매 달마다 얼마'라는 식으로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형태인데,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최적의 경우를 상정하면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월급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패트리언에 가입하고 새 계정을 만들면 우선은 그냥 후원자 입장의 계정이 되는데, 중간에 자신의 계정을 크리에이터 계정으로 바꿀 수가 있다. 크리에이터 계정으로 설정하면 위와 같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세팅하는 페이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세번째의 'What are you getting paid for?'(어떤 형태로 지급을 받을 것인가?)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곡 한곡, 앨범, 영상을 만든다면 비디오 한편 만들때마다 돈을 받는 형태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밑에 있는 Monthly campaign이 바로 매 달마다 자신의 활동에 대해 돈을 받는 옵션이다. 




 '매일, 혹은 매우 정기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들에게만 권장된다. 작업물 하나당 얼마가 아니라, 매달 한번씩 후원자들이 돈을 내주게 된다.' 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설정을 마치면 자신을 알리는 홍보 비디오와 후원자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문구를 업로드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는 프로젝트 중간중간에 넣을 수 있는 Goal을 설정하게 된다. 이것은 설정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크리에이터 자신도 좀 더 동기 부여를 하고 후원자들도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간다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후원자들에게 돌아갈 보상을 설정하게 된다. 후원자들 덕분에 수입이 들어오면 그 후원자들에게 보상하는 금액, 그리고 감사의 메시지와 비디오 등을 설정하는 것. 이것도 역시 설정하지 않아도 되긴 한다.


 이상의 설정을 마치면 크리에이터로서의 등록이 완료된다. 


 패트리언 사이트는 후원자들이 낸 금액에서 5%를 수수료로 받고 나머지를 크리에이터에게 주며, 매달 5일에 자동이체를 해준다고 한다. 후원자들의 후원은 보통 신용카드나 PayPal 결제로 이뤄지며, 후원자로부터 카드 지불거절이나 취소 등의 이유로 입금이 되지 않을 경우 패트리언 사이트에서 확인하고 재차 지불하도록 요청하고, 성공적으로 지불이 되면 다음달의 이체 때에 연체된 금액을 포함시킨다. 즉 어떤 크리에이터의 후원자가 되면 자신의 카드로부터 매달 금액이 나가는 셈. 매달 돈을 받으려는 크리에이터라면 매달 일정한 금액이 빠져나갈 것이고, 한 작품당 돈을 받는 크리에이터라면 작품을 완성시킨 달에 작품 수만큼 돈이 나갈 것이다. 어떤 의미로 후원자는 조금 리스크를 안고 후원을 결정해야 하는 셈. 킥스타터같은 사이트보다는 보다 더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FAQ를 읽어보면 위에 쓴 기본 시스템 이외에도 다양한 사이트의 운영 원칙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킥스타터보다 특히 한국 크리에이터들에게 좋은 점은, 국제적 지불수단(VISA 등의 국제 호환 카드나 PayPal 계좌)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국가 제한이 있어 한국인이 이용하기 힘든 킥스타터보다 월등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혼자 힘으로 하나의 프로젝트 결과물(그림이라면 아트북, 게임이라면 완성된 게임의 발매, 음악이라면 앨범 등등...)을 완성시키기 힘든 크리에이터 개인도 자신의 작업물을 평가받고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http://www.patreon.com/creation?hid=1070951



 말은 좋지만 후원자들이 제대로 일해줄지도 모르는 크리에이터들을 믿고 과연 자신의 카드로부터 매달 돈을 내어줄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할 지 모른다. 하지만 크리에이터가 애써서 만들어낸 창작물을 높이 사주고 대우해주는 서구인들답게, 사이트를 만든지 1년 반만에 12만 5천명 이상의 후원자가 생겼고, 이 후원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매달 백만 달러 이상을 후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런 선순환 - 후원자들이 자신들이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보다 직접적으로 후원해주고 크리에이터들은 그런 후원에 힘입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 구조가 나오지 못한 점은 한편으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패트리언이라는 사이트의 존재와 개념은 매우 흥미롭다. 제대로 자신의 노력과 재능을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크리에이터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자유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역시도 이 사이트를 이용해 뭔가 해볼 생각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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