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이라고 하면 너무나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애니메이션 세대에게는 2003년에 새로 제작된 "Astro Boy 아톰" 이외에는 아톰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 않았을까 싶다.


 이 2003년판 아톰은 개인적으로 나와 같은 70년대생들에게는 좀 씁쓸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내용이나 스토리 전개도 그렇고 아톰의 디자인이나 전체적인 작화 스타일도 상당히 아동 취향으로 바뀌어 버려서, 처음엔 무척 기대를 했다가 1, 2화 정도를 본 뒤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코가 용서가 안된다(...)


 개인적으로 역시 아톰 시리즈는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80년도판 애니메이션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물론 아톰은 원래 단행본 만화가 원작이고, 1963년 흑백 TV 시절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있으니 80년도판이 이른바 "원조"라고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톰의 원작 단행본 코믹스

1963년의 흑백판 아톰 애니메이션


80년도판의 아톰


 아톰이라는 캐릭터와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페니웨이 님의 글을 링크한다.

 아스트로 보이 특집 : 불타는 철완아톰 연대기 -1-
 아스트로 보이 특집 : 불타는 철완아톰 연대기 -2-

 나보다 더 예전에 태어나서 흑백판을 보셨던 분들은 80년도판 역시도 "원작"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80년도판을 조금 더 자세히 본다면 이 작품을 왜 높게 평가할 수 있는지 공감할 수 있으리라 본다.

 80년도판 아톰은 니혼 TV에서 제작된 52화 짜리 애니메이션 시리즈이다. 8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에서는 70년대의 단순한 연출과 작화 수준을 벗어나 보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풍부하고 입체적인 작화를 보여주는 90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3화에서 처음 학교에 갔다가 기계 고장으로 폭주하는 롤러코스터 속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첫 활약에 나선 아톰. 초반의 연출은 옛날 애니메이션답게 다소 밋밋하지만 롤러코스터를 따라잡아 빼내는 장면은 속도감과 화면의 밀도가 상당하다. 구조에 성공한 뒤 지면에 추락한 아톰의 어깨가 부서져 내부의 기계 구조가 보이는 장면도 이채롭다. 일본어 원판 영상을 도저히 찾기가 힘들어 영어 더빙판 영상을 소개하는 점은 이해 바란다(...).

 위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80년도판 아톰은 일단 아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의도적으로 가볍지 않은 작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군데군데에서 보인다. 아톰이 활약하는 장면에서는 그 힘들어하는 표정이나 부서지고 파손되는 장면들이 굉장히 강조되곤 하며, 배터리가 다 되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세뇌되어 적의 뜻대로 행동하게 되어 버리거나 하는 등 아톰의 "로봇"이라는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에피소드들이 꽤나 강렬한 연출로 들어가 있다. 이런 특징들은 이 80년도판 아톰을 단순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원작의 컨셉을 계승한 진중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끔 한다.

 그런 연유로 당시 아톰을 열심히 시청했을 비슷한 연배의 팬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을 터이다. 나 역시도 다수의 에피소드들이 아직까지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몇 편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 눈의 표범 편


 이 에피소드는 아직도 기억에는 선명히 남아 있는데 제목이 뭐였는지 몰라서 꽤나 찾아 헤맸다. 외계에서 온 슬라임 형태의 전기생물이 지구를 습격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많은 로봇들이 합체해서 거대 로봇으로 변형하여 이 외계 생물과 싸우는 내용이다. 작은 로봇 여러 대가 유기적으로 합체 - 정해진 2~3대의 로봇이 물리적인 메카니즘으로 합체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들러붙듯이 - 하여 거대 로봇이 되는 묘사가 꽤나 유니크하며, 슬라임이 몸체의 구석구석에 들러붙어 에너지를 흡수해서 합체가 풀려 버리는 장면도 매우 인상깊었던 씬.


 * 로봇 대통령 편


 세계에서 가장 먼저 로봇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그라비아(...응?) 공화국. 그러나 로봇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인간들이 로봇 대통령 리치를 제멋대로 조종해 테러를 일으킨다. 로봇이 과연 인간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인간들의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통령과 같은 직책마저 수행할 수 있을까? 다소 황당한 가정이지만 사실상 이러한 물음은 서구의 원조 SF들이 끊임없이 다루었던 주제 중의 하나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이지만 이러한 철학적인 SF 주제를 어린이들에게도 잘 와닿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연출한 부분은 아주 훌륭하다. 

 대체로 당시에는 인디애나 존스의 해골물 마시기 장면이나 슈퍼맨 3에서 컴퓨터에 의해 과학자가 기계인간이 되는 장면 등, 주인공들의 신체나 인격이 악에 의해 개조당하는 장면이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안겨줬었다. 이 에피소드 역시 다소 수위는 낮지만 같은 맥락에서 무척 임팩트 있는 내용으로, 아직까지 기억되는게 아닐까 싶다.


 * 쌍둥이 우란 편


두 명의 우란이 서로 네가 분신이라고 우기며 부르는 노래.
북미에서 방송되었던 "ASTROBOY"에서는 곡의 저작권 등의 문제로 이 부분이 빠졌다.

 이 80년판 아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임팩트가 있던 에피소드. 아톰의 여동생으로 만들어진 로봇 우란은 아톰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로봇으로, 우연히 격투 대회에 나가서 상대를 가볍게 물리쳐 주목을 받는다. 이를 눈여겨 본 악당들이 우란을 꼬셔서 원할 때에 둘로 몸이 분리되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부모나 아톰이 모르게 하나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다른 하나는 격투 대회에 나오라는 것이었지만, 몸이 둘로 분리되면서 파워도 절반으로 줄어버린 우란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위기에 몰리게 된다.

 밤에 잠자리에서 분리 기능을 써본 우란. 무서워서 도중에 그만둔다.

처음 봤을때는 충격적이었던 분리 장면. 

분리 완료! (...)


 이 에피소드가 유달리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우란이 분리되는 과정이 기계적인 메카니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치 유기체처럼 분리된 면에서 하얀 거품같은 것이 나오면서 이루어지는 묘사 덕분이었다. 둘로 분리된 덕분에 파워도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획기적 설정이 돋보였음은 물론이다. 


 아톰은 건담과 더불어 일본이 낳은 만화/애니메이션의 아이콘이며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 80년판 애니메이션 이래로 이 훌륭한 캐릭터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작품이 되지 못했다. 이것은 사실 아톰만의 문제는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그리고 문화 전반의 문제이지만, 특히나 아톰에 추억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CG로 만들어진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스트로 보이 아톰". 

CG의 질감은 로봇인 아톰에게 잘 어울릴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톰이 아톰답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너스로 소개하는 아톰 시리즈들.

충격과 공포의 아톰 실사판 드라마(...)

1959년~1960년까지 마이니치/후지테레비에서 방송된 것으로, 당시에는 총 65부작으로 방영되었으나, 워낙 오래된 나머지 일부 필름이 유실되어 현재 복간된 DVD에는 총 58화 분량만이 들어가 있다.


"마스터 키튼", "몬스터"로 유명한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행본 시리즈 "PLUTO"에 등장하는 아톰.

원작의 "세계 최강의 로봇" 에피소드를 재해석하여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스타일로 새롭게 그린 작품으로, 단행본 1권의 이 장면은 왕년의 아톰 팬들을 설레게 했다.


GBA용 액션게임 "아스트로 보이 아톰".

새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발표에 힘입어 PS2, Wii 등의 기종으로 아톰 게임이 많이 발매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GBA용의 이 작품이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콘솔 게이머들에게 이미 높은 완성도로 인정받고 있는 액션 게임의 명가 트레저가 실 제작을 담당해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며, 단순히 아톰만이 아니라 "불새", "정글대제", "사파이어 왕자" 등 주옥같은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을 모두 망라하는 방대한 스토리와 연출을 담고 있다. 아톰의 팬이라면, 그리고 액션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꼭 해봐야 할 작품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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