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사이트에서 최근 도스 게임들이 무료공개되어 꽤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바야흐로 백 투더 퓨처 2의 미래 배경인 2015년이 되고 이젠 2000년대도 10여년 전 이야기가 되다 보니 도스 게임이란게 뭔지도 모르는 세대가 늘어가는 것이 당연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같은 7, 80년대생들에게 도스 게임들은 단순한 옛 추억이 아니라 교과서이고 영원한 마스터피스임에 틀림없다.
주옥같은 게임들이 넘치는 도스 시대이지만 특히 나에게 인상깊었던 것은 TITUS사의 게임들이었다. 중학교 시절 불법복사를 통해 처음 접했던 이 회사의 게임들은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고, 다음 게임, 또 다음 게임을 해봐도 그 완성도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게임들,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게임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의 발자취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1. 어떤 회사인가
이 회사의 정식 명칭은 TITUS Interactive이다. TITUS Software, TITUS Game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게임회사로, 1985년에 Eric Caen과 Herve Caen 두 형제에 의해 창업되었다.
Herve Caen
Eric Caen
창업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미가, 아타리 ST, 코모도어 64 등등의 클래식 컴퓨터용 게임을 만들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90년대에 들어서는 도스용 게임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게임 시장의 초창기부터 활동을 해왔으니만큼 하드웨어의 퍼포먼스를 바닥까지 긁어내 만드는 개발력에는 일가견이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런 초창기 개발사들의 문제점이 그렇듯 진화하는 플랫폼과 업계의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점점 쇠락해 갔다. 특히 90년대 중후반부터는 PC를 벗어나 콘솔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게임의 평이 꽤나 좋지 못했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명 게임 웹진들로부터 부정적인 리뷰를 받는 일도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TITUS는 2005년에 파산하고 만다. (참고 : http://en.wikipedia.org/wiki/Titus_Software)
다만 시장의 초창기와 도스 시절까지 TITUS는 상당히 잘 나간 회사였다. 옛날엔 배틀체스와 MDK, 어스웜 짐,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등,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발더스게이트, 폴아웃으로 유명했던 Interplay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Interplay는 원래 1983년에 Interplay Productions로 시작했는데(참고로 창업주는 요즘 웨이스트랜드 2로 핫한 브라이언 파고이다), 1998년 자금 위기에 봉착한 Interplay에 무려 3500만 달러를 투자해 구원해준 것이 바로 TITUS였다.
Brian Fargo
덕분에 TITUS의 공동 창업자 Herve Caen은 Interplay의 CEO가 되고, 사명도 Interplay Entertainment로 바꿔 새출발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Interplay는 2006년 다시금 파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Black Isle 스튜디오를 분사독립시키게 되고 폴아웃의 IP를 베데스다에 판다. 폴아웃에 관한 베데스다와의 법적 분쟁은 최근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참고 : http://en.wikipedia.org/wiki/Interplay_Entertainment)
다만 브라이언 파고는 Herve와 사이가 꽤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Herve는 콘솔게임을 주력으로 하고 싶어했고 보다 캐주얼한 게임을 만들려고 했다. 브라이언은 웨이스트랜드를 비롯한 그의 캐리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보다 진지한 성인 지향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것이 결국 브라이언 파고가 인터플레이를 떠나 엑자일 스튜디오를 세우는 직접적 원인이 되는데, 그의 시리어스한 RPG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에게 있어 TITUS와 Herve는 악당으로 비쳐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참고 : http://farfromearth.blog104.fc2.com/blog-entry-97.html)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양측의 게임 철학과 가치관이 충돌했을 뿐으로, TITUS가 본래부터 추구하던 누구나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플랫포머 게임도 절대 잘못된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다.
2. TITUS가 가장 빛나던 시기의 게임들
한국의 클래식 게이머들에게 TITUS가 알려진 계기는 아마도 게임월드와 같은 잡지 소개 및 불법 복제라 할 것이다. 위에 소개했듯이 옛날부터 게임을 만들어 오고 있었지만, 이들의 게임이 어느 정도의 레벨에 올라 원숙한 맛을 내기 시작한 것은 실질적으로 90년대의 도스 게임부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며, 국내 게이머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1) 선사시대(Prehistorik) : 1991년
큰 인기를 구가했던 TITUS의 출세작. 선사시대 원시인을 테마로 한 횡스크롤 플랫포머 액션 게임.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온 TITUS였지만 대부분 게임 시스템 자체를 놓고 보면 단순한 슈팅이나 일자 진행형 액션이 많았는데, 이 작품부터 좀 더 복합적인 스테이지 구성과 다양한 오브젝트, 기믹들이 등장한다. 어딘지 모르게 전반적으로 너무 빠르고 허술하던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조작도 보다 부드러워지고 입체적이 된다.
또한 이 게임을 열심히 플레이해본 게이머들은 알겠지만, TITUS 게임들의 특징인 숨겨진 요소들이 이 게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위 영상 2분 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첫번째 물구덩이에는 아이템이 가득 숨겨져 있다. 보통은 물에 빠지면 즉사이므로 이런 곳은 들어가 보지 않게 되지만 한번 이런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스테이지 구석구석을 찾고 다니게 된다. 그러다가 숨겨진 장소나 아이템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하면 그 쾌감이란! 일일이 찾지 않아도 클리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이런 숨겨진 요소들을 찾는 재미에 빠져든 유저들은 이 게임과 제작사인 TITUS에 주목하게 된다.
2) 블루스 브라더스(BLUES BROTHERS) : 1991년
존 랜디스 감독의 1980년도 뮤지컬 코미디 영화를 게임화한 것으로, 위의 선사시대와 같은 1991년에 릴리즈되었다. 아마도 이 게임이 조금 더 나중에 제작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선사시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시도와 게임플레이가 도입된 작품이기 때문.
2인 동시 플레이가 지원된다거나, 스테이지를 선택해가며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 등 다양한 개선점이 있었지만 게임성에 있어서 가장 큰 혁신은 아이템의 존재이다. 필드 구석구석에 놓여 있는 상자를 집어들고 이동하여 원하는 적에게 던져서 공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상자는 밟고 위에 올라설 수도 있어서 높은 곳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퍼즐적 요소도 자연스레 갖추게 된다. 다만 이때는 이런 필드 오브젝트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이라 들 수 있는 아이템은 상자 한 종류로 제한되어 있었고, 한번 집어든 상자는 무조건 던져서 없애버릴 수밖에 없는 등 한계점이 많았다. 이런 단점은 이후 발매되는 Moktar와 TITUS The Fox에서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게임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위에서 언급한 던지는 상자의 존재는 캡콤에서 패밀리 컴퓨터(NES) 용으로 개발한 '칩과 데일의 다람쥐 구조대'(Chip N' Dale Rescue Rangers) 시리즈로부터 꽤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면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전작인 선사시대에서 성공적으로 구현했던 숨겨진 요소도 역시나 확실하게 파워업해 등장하는데, 곳곳에 숨겨진 아이템은 물론 공개 후 꽤 시간이 지나서 밝혀진 2단 점프의 존재도 매니아들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됐다. 상자를 들면 점프의 높이가 낮아지는데 이 때문에 평소 갈 수 있던 지역을 못 가게 된다. 그러나 2단 점프를 사용하면 평소의 점프 높이만큼 뛰는게 가능해져 상자를 든 채로 평소와 같이 움직여 다닐 수 있게 되는 것.
대표적으로 2단 점프를 활용할 수 있는 곳. 상자를 들면 점프 높이가 낮아져 사다리를 탈 수 없지만,
사다리 밑에서 두번 점프하면 상자를 들고 사다리를 올라가 위에 있는 적을 해치울 수 있다
물론 2단 점프 자체는 다른 게임에서도 흔하게 있는 시스템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평소에는 점프를 두번 해도 2단 점프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위에 사다리 같은 뭔가 잡을 수 있는 오브젝트가 있을 때에만 2단 점프를 해서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도 이 게임에서 2단 점프가 가능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의 페이지 단위 스크롤에서 벗어나 프리 스크롤을 도입한 덕분에 게임이 굉장히 스무스해지고, 엘리베이터 등의 신 요소가 대거 도입되어 게임의 볼륨도 엄청나게 커졌다.
오늘날 1, 20대 게이머들로서는 아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90년대 초반의 도스용 PC 게임들이라는 것은 현재의 게임과는 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대부분의 PC는 겨우 16비트 연산이 가능한 시절이었고, 다이렉트X나 OpenGL과 같은 그래픽 가속 솔루션도 없었다. 프로그래머들은 PC의 비디오 메모리를 조작해서 화면에 직접 점을 찍어 그래픽을 나타내야 했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PC 게임들은 퍼포먼스가 천차만별이었고, 화면의 스크롤이나 캐릭터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다. 화면 스크롤이 아예 안되거나, 된다고 해도 픽셀 단위로 세밀하고 부드러운 스크롤이 되는 게 아니라 타일 단위로 툭툭 끊어지면서 스크롤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초대 악마성 드라큘라의 도스 버전과 패미컴 버전. 패미컴 버전은 8비트임에도 불구하고 스프라이트 기능이 탑재된 게임 전용 머신인 덕분에 움직임과 스크롤이 훨씬 부드러운 것을 알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당시 도스 환경에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을 구현하는 게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는 뜻이 된다.
TITUS의 놀라운 점은 이런 시대의 도스 환경에서 게임기에 버금갈 정도로 부드러운 애니메이션과 화면 스크롤을 구현해냈다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는 어셈블리 프로그래밍을 통해 하드웨어 레벨에서 그래픽 함수를 만든 TITUS의 기술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게임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덕분에 버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상자를 들고 던지는 부분의 알고리즘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덕분에 다른 게임 요소들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증상이 있다.
- 상자를 들고 던져서 날아가는 상자가 화면에서 사라지기 전에 재빠르게 다른 상자를 들면 날아가던 상자가 공중에 멈춘다. 이 상자는 여전히 판정을 갖고 있어 적이 오다가 상자에 닿으면 상자에 맞은 것으로 처리되어 죽는다. 상자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다른 상자를 들려 하면 상자가 없어져 버리니 주의해야 한다.
- 2P 캐릭터인 엘우드는 상자를 든 채로 전속력으로 이동해 적에게 몸으로 부딪치면 바로 적을 죽일 수 있다. 아마 캐릭터 스프라이트가 날씬한 덕분에 피격판정도 작아서 가능한 현상인 듯. 버그지만 아주 유용하다. 단 이동 중 멈춰서거나 해서 속도가 전속력이 아닐 경우에는 이쪽이 대미지를 입으니 주의. 원거리에서 총을 쏴대는 경찰 등은 거리 계산을 잘 하지 않으면 좀 위험하다.
상자를 던지지 않았는데도 맞고 날아가는 건달
- 국내에 퍼진 복사본은 2인 동시 플레이를 할 경우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아 진행이 불가능한 버그가 있다. 이 게임의 악명높은 버그인데 일각에서는 복사판의 범람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조작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이 부분이었던 듯
- 1스테이지 후반에 등장하는 우산은 1회용 아이템으로 얻으면 얻어맞거나 내던지지 않는 한 높은 곳으로 점프 후에 천천히 활공하며 내려오게 된다.
문제는 이것도 겹쳐 들기로 버그가 걸리는데... 우산을 하나 든 상태에서 다른 우산과 겹쳐 선 뒤 든 우산을 스페이스키로 날려보내고 바로 새 우산을 들던지, 아니면 위에서 설명한 상자 띄우기를 한 뒤 우산을 먹으면 우산의 활공효과가 계속 걸려있게 된다.
우산은 하늘에 떠서 멈춰있고 엘우드는 활공 중
1스테이지만 해도 버그가 이정도나 나오는지라... 게임 자체도 잘 만들었고 재미있지만 이런 버그가 더더욱 기억에 남는 게임이다.
3) 돌아온 여우 (TITUS The Fox to Marrakech and Back) : 1992년
선사시대와 블루스 브라더스에 이어 바로 다음해에 나온 문제작. 국내에도 불법복제본이 퍼지고 게임월드에서 공략을 소개해주어 상당히 널리 알려진 고전 도스게임 중의 하나이다.
원래는 프랑스의 유명 엔터테이너인 Vincent Lagaf의 곡 La Zoubida의 뮤직비디오를 소재로 제작된 Moktar라는 타이틀의 게임이었다.
Lagaf의 캐릭터 Moktar 쇼
Moktar가 등장하는 La Zoubida의 뮤직비디오
하지만 프랑스 국내에서만 유명했던 사람인지라, 해외 버전에서는 인지도 문제를 생각해 단순히 귀여운 여우로 캐릭터를 바꾸게 되었고, 심하게 어렵다고 지적된 난이도를 다소 낮추어서 발매된 것이 이 TITUS The Fox이다. (그럼에도 이 해외버전 자체도 어렵다고 평가받고 있으니...)
널리 알려져 있는 버전은 도스/아미가/Amstrad CPC 버전인데, 이외에 게임보이/게임보이 컬러 버전도 나왔다. 원작의 스피디한 게임플레이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게임성 자체는 그런대로 괜찮게 이식한 편.
게임보이 버전
게임보이 컬러 버전
게임적으로는 더욱 깔끔해진 그래픽과 부드러운 애니메이션 및 스크롤을 보여주고 있으며, 총 14스테이지의 방대한 볼륨도 놀라운 작품. 가장 임팩트가 강한 것은 블루스 브라더스에서 도입되었던 아이템 '들기' 요소를 더욱 더 강화시킨 것인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게임플레이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 모든 아이템을 집어올려 들고 다니다가 원하는 곳에서 내려놓을 수 있다. 아이템은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아이템과 그렇지 않은 아이템이 존재해, 맵에 존재하는 아이템을 들어다 운반하여 원하는 곳에 놓아서 지형을 극복하는 퍼즐 요소가 엄청나게 강화됐다. 특히나 이번엔 단순히 밟고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번 밟으면 탄력으로 플레이어를 점점 더 높게 뛰게 하는 스프링이나 고무공 같은 아이템도 등장하여 한층 더 공략의 폭이 넓어졌다. 게다가 일반적인 아이템은 높은 데서 내려놓으면 밑으로 떨어져 바닥에 떨궈지지만, 이런 스프링이나 고무공은 바닥에 떨어질 때에도 물리 엔진으로 튕기기 때문에 반동으로 아이템 위에 놓이거나 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특성을 사용해 공략해야 하는 맵 퍼즐을 가득 만들어놓았다는 것. 이런 매니악한 게임성은 골수 유저들을 반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난이도도 무척이나 높아져 버려 일반 유저들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아이템은 블루스 브라더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던지면 적에게 맞아 타격을 입히고 없어지거나, 적에게 맞지 않았다면 그냥 화면 밖으로 날아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이 작품부터는 적에게 맞아 타격을 입혀도 없어지지 않고 다시 주워 던질 수 있는 수레와 같은 아이템부터 시작해, 던지면 물리 연산으로 통통 튕겨다니다가 점점 움직임이 약해져 바닥에 정지하는 고무공, 던지면 공중에 떠있고 위에 점프해서 올라타면 날아가는 양탄자, 올라타면 전진하는 스케이트보드나 스쿠터 등 실로 다양한 종류의 아이템이 등장하고 활용 방법과 공략도 무궁무진하게 나온다.
던져서 맞추면 없어지는 1회성 아이템도, 위로 점프하여 수직으로 위로 던져올리면 아래로 떨어지면서 밑에 깔리는 적에게 대미지를 준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1회성 아이템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파악하면 아이템이 극도로 적게 배치된 부분에서도 편하게 적을 공략하며 나갈 수 있게 된다. 고작 1.2MB 2HD 디스켓 한장에 들어가는 90년대 도스 게임에 이 정도의 물리 계산과 치밀한 액션, 그리고 퍼즐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TITUS 게임의 전통인 숨겨진 요소가 더욱 더 강화되었다. 어떤 스테이지는 시작하자마자 천정에 뚫린 구멍에서 떨어지면서 시작하는데, 막 떨어지기 시작할 때 방향키를 오른쪽 위로 입력하고 있으면 복잡한 본 스테이지의 밖으로 뛰어나가 버리고 일직선으로 이동해 스테이지 클리어까지 갈 수 있다(...). 숨겨진 요소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공략을 한 국내 게이머가 있으니 참고삼아 읽어보기 바란다. 공격하는 적까지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이번에 이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20여년만에 처음 알았다(...)
- 스테이지가 늘고 게임의 볼륨이 길어졌지만 세이브 대신 스테이지별 패스워드를 제공해준다. 특이한 것은 시스템을 감지해서 같은 스테이지라고 해도 컴퓨터마다 패스워드가 전부 다르게 생성된다는 점. 덕분에 엔딩을 보려면 자신이 직접 게임에 도전해서 클리어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TITUS였기에 가능했던 특징이라 할 것이다.
- 해외의 어느 팬사이트(http://ttf.mine.nu/)에는 이 게임의 제작 배경과 게임플레이, 전체 맵, 숨겨진 요소, 트레이너를 사용한 커스텀 스테이지 제작 및 플레이 방법 등 다양한 요소를 소개하고 있다. 이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게이머라면 꼭 한번쯤 들러 보길 바란다.
3. 서서히 저무는 TITUS의 황금기
3작품이 연이어 유저들에게 인기를 끌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던 TITUS지만, 새로운 도전보다는 시리즈물의 속편을 내고, 장르적으로도 플랫포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을 내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들의 게임은 유저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게임들이고 기술적으로는 더 나아졌지만 정작 중요한 '재미'가 없어졌다... 이것은 게임에 있어서 굉장히 미묘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히트한 작품과 8, 90%까지 비슷하게 만들었어도 나머지 1, 20%가 그 게임의 재미를 좌우해버린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의 대형 AAA급 게임들에 있어서도 변함없이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1) Super Cauldron : 1992년
TITUS 나름대로는 새로운 오리지널 게임을 만들려고 도전했던 작품. TITUS의 주특기인 횡스크롤 플랫포머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진 않았으나 주인공을 마법사로 설정, 다양한 마법을 사용해 게임을 풀어나가는 보다 RPG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한 실험적인 작품. 하지만 역시나 액션으로서의 재미가 부족했던 탓인지, 크게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2) 선사시대 2(Prehistorik 2) : 1993년
TITUS The Fox로부터 바로 또 1년 뒤에 발표된 선사시대의 속편. 신작들을 만들며 쌓인 노하우 덕분에 1편에 비하면 월등히 나아진 기술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작품. 슈퍼패미컴 버전은 패미통에서 40점 만점에 27점을 획득했다.
다만 전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못했고 인기를 끌지도 못했는데, 비슷한 스타일의 플랫포머 게임에 유저들이 좀 식상한 감도 있고, 무엇보다 퍼즐과 숨겨진 요소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액션의 재미가 많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위 플레이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보통 평범한 유저라면 도저히 있는지도 모를 숨겨진 아이템과 루트가 1스테이지부터 마구 튀어나오는 바람에 당황하게 되고, 게임의 진행이나 루트가 지나치게 장황해져서 목표의식을 잃게 만드는 구성에 문제가 좀 있다.
참고로 TITUS는 이 게임부터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지원을 중지했는데, 덕분에 허큘리스 카드를 꽂은 286 PC를 가지고 있던 나는 당시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겨우 이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게 된 건 96년 대학에 들어가서 학교 컴퓨터실에 있던 펜티엄을 만지면서부터였다.
2) 블루스 브라더스 2(The Blues Brothers 2 - The Jukebox Adventure) : 1993년
TITUS의 도스 후기작들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많은 작품. 일단 위 플레이 영상에서부터 딱 감이 온다. 타이틀은 블루스 브라더스이지만 전혀 상관없는 분위기의 배경. 오히려 선사시대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바위산과 나무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제이크의 모습이 심히 어색하다. 기획의 안일함이 눈에 보이는 부분.
원작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점도 문제이거니와, 블루스 브라더스 1과 TITUS The Fox에서 보여준 특유의 분위기와 미장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도 큰 문제다. 특히 당시 TITUS의 장기는 지하철역, 하수도, 공사장 등 좀 허름한 도시 뒷골목의 배경을 굉장히 정감있게 묘사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들을 즐기면서 한국, 일본, 대만 게임에서는 접하기 어렵던 독특한 배경과 미장센에 매료되었었다. 비록 256색의 투박한 도트 타일 그래픽이었지만, 플레이어가 그 세계에 실제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특유의 배경은 지금 봐도 유저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접 플레이 영상을 보고 느껴보길 바란다.
블루스 브라더스 1의 4스테이지, 지하철역과 하수도
블루스 브라더스 1의 6스테이지. 콘서트 홀
3) 블루스 브라더스 2000 : 2000년
세가새턴,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64가 등장하고 콘솔게임이 득세하면서 TITUS도 콘솔 게임에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새로이 대두된 3D 기술에서 TITUS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과도기적인 미스를 연발한다. 물론 이것은 당시 처음 3D 게임을 대하는 많은 회사가 범하는 실수였고 특별히 TITUS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시장은 냉정한 법이다.
영화 원작의 판권을 더 우려먹어보자는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전작의 성공을 콘솔에서도 재현하고 싶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TITUS는 2000년 블루스 브라더스의 신작을 닌텐도 64로 발매한다.
문제는 플레이 영상에서 보듯, 예전 2D 시절에 보여줬던 정감있고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조작감, 알기 쉽고 직관적인 게임플레이 등등 이전의 매력을 어느 하나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3D의 공간감과 입체적인 특성은 완전히 게임의 구성 요소를 바꿔놓는다. 소닉 시리즈도 3D화된 후 본질적인 게임성에서 길을 잃어버렸지만 마리오 64는 전혀 새로운 게임플레이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살아남은 것을 보아도 이 문제는 중요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D가 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재미가 무엇이 있는지, 게임에 그것이 잘 녹아들어 있는지 철저히 연구하지 않으면 언제나 그렇듯 비슷비슷하고 겉모습만 그럴듯한 게임이 되고 만다. TITUS는 이외에도 희대의 쿠소게임으로 유명해진 닌텐도 64용 Superman등을 발매하며 점점 신뢰를 잃고, 결국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파산해버리고 만다.
바뀐 시대와 기술 그리고 트렌드에 현명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 버렸지만, 그 시절 그토록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수많은 게이머들과 예비 개발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TITUS의 게임들은 아마도 영원히 남을 것이다. 더불어 최근의 게임들이 갈수록 소홀히 하기 쉬워지는 게임의 본질적 재미가 어디에서 오는지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