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정도쯤, 휴대폰 게임이 WAP에서 GVM으로 넘어가 한참 다운로드 게임이 흥하고 있던 때였다. 회사에서 주는 작업들에 좀 질린 나는 뭔가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게임을 좀 구체화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짬 날 때마다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떠올려 컨셉을 정리하고 구라 스크린샷을 만들어보곤 했다. 그때 만든 아이디어 중의 하나가 '지옥대난투'라는 타이틀이었는데 그저 공격버튼 연타와 물약먹고 스킬쓰는 단순한 한국식 RPG를 탈피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짠 기획이었다.
열혈고교나 더블드래곤처럼, 그냥 치고받는 것 이외에도 필드와 오브젝트를 활용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엔 GVM의 한계상 맵을 저렇게 장애물을 늘어놓는 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은 적을 들어올려 내던지거나, 다른 오브젝트 등을 들어서 던지는 액션이었다. 더블드래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은 캐릭터의 체술 액션 외에도 드럼통을 들어서 던지거나 하는 다양한 액션과 그로 인해 가능해지는 다양한 공격 방법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한 기왕 물건을 집고 던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봄버맨 파이트에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시한폭탄 같은 것을 넣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았다. 폭탄의 시간이 다 되어서 터질 때까지는 나도 적도 몇 번이든 다시 들어서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외에도 필드에 여러 가지 함정들이 설치되어 적도 나도 서로 그 함정을 피하고 이용하며 싸우면 마치 마리오카트를 즐기는 것 같은 다양한 재미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을 재우는 수면 가스라던지, 독가스, 불, 기타등등...
매우 만들어 보고 싶은 게임이었지만, 결국 이 게임은 아이디어에 그친 채 3년이 흘러갔다. 2008년, 나는 다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서 뭔가 새로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고 나는 옛날의 그 난투 기획을 떠올렸다. 모처럼 내 마음대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플랫폼도 GVM에서 GNEX로 옮겨져 조금은 더 화려하고 섬세한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하드 구석에 잠자고 있던 옛날 작업물을 꺼내들고, 나는 전체적으로 틀을 새로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세계관 자체도 인간 세계에서 짱을 먹는 학교 주인공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자만하자, 마계의 학생들이 도전을 신청해온다는 만화같고 알기 쉬운 세계관으로 구체화시켰다. 이때 세부기획을 맡았던 김군이 적 캐릭터들의 컨셉 설정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줘서 평범하지 않고 개성적인 적들이 많이 나왔다.
정말 열심히 불타올라 작업을 했고 시스템, 밸런스, 그래픽 등에 공도 많이 들였다. 이때의 작업물(http://blog.naver.com/windship/220190436150)들은 지금 봐도 참 원없이 즐겁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래픽 작업이 완료되고 본 게임의 구현을 한참 들어가려는 때에 회사로부터 작업 중단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 프로그래머가 액션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상당히 고전하면서 이것저것 배워가며 만들고 있던 참이었는데, 회사로서는 원하는 기간 안에 매출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프로그래머는 정말 열심히 해주고 있었고, 다만 경험이 없어서 진도가 느렸던 것뿐이었다. 그걸 기다려주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접으라는 지시를 받은 건 정말 기운빠지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도 이 게임은 빛을 보지 못하고 하드 구석으로 처박혔다.
시간이 흘러 아이폰이 나오고 앱스토어가 나오고 모바일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더 이상 모바일에서 도트 그래픽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풀 3D 게임과 고해상도 2D가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가슴 속에 이 게임을 언젠가 완성시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요즘은 짬날 때 조금씩 도트 시절의 소스를 리터치해 새로 만들어보고 있다.
물론 손댈 곳이 엄청나게 많지만, 옛날에 이런저런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했던 부분이 요즘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다. 언젠가는 꼭 내 마음에 드는 게임으로 완성시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