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초기의 시나리오 담당 테라다 켄지 씨가 FF를 떠난 이유와 크리에이터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테라다 켄지(寺田憲史)
애니메이션, TV드라마, 영화, 게임, 만화, 소설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멀티 크리에이터. 각본가, 작가, 연출가, 프로듀서. TV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근육맨",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코브라", "캣츠아이" 등 다수. 소설로는 "신 오렌지로드" 전 3권이 베스트 셀러. 게임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3편까지). 저서로는 미국 체류기 "시애틀의 피터팬", 그리고 소설, 원작을 담당한 만화책 다수. 근저 "루카스를 넘어서 / 애니메이션 게임 비즈니스 창작술".
게임에 있어서의 스토리성이란 무엇인가
"파이널 판타지 X" (이하 FF X)는 게임과 영화의 경계선을 더욱 더 애매하게 만들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원래 "FF"가 영화적이라고 평가되어 온 것은 그 게임의 시나리오, 즉 스토리의 전개가 드라마틱하게 발전해 왔기 때문에 듣게 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CG의 아름다움이나 영화적인 표현 기법만을 가지고 "영화적이다"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기 시작했다.
만일 "영화적이다"라는 말을 "영상이 리얼하다"라는 말로 해석한다면, 하드웨어가 진화하면 모든 게임이 "영화적"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의 스토리성은 관계없이 말이다. 이런 식의 "영화적"인 소프트가 늘어간다면 스토리성이 최대의 특징인 RPG라는 장르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일단 그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메이커에게 요구되는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
테라다 켄지 씨는 "FF" 시리즈 중 1~3편의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 아마노 요시타카 씨와 함께 현재의 "FF"의 기반을 구축한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카구치, 아마노 두 사람은 현재도 어떤 형태로든 "FF"에 관여하고 있는데 반해, 테라다 씨는 4편 이후 완전히 "FF"에서 떠나버렸다.
"FF 시리즈가 플스로 간 이후로는 전혀 터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네, 4편 이후로는 확실히 말해서 개인적으로 플레이한 적도, 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라고 테라다 씨는 말한다. 4편 이후로 "FF"와 결별해버린 것인데, 그 원인은 스퀘어 측과 테라다 씨 사이의 게임 시나리오에 대한 사고 방식의 차이였다.
"3편까지는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대해서 면밀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시나리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작품 전체에 대해서 권한을 가지게 돼서 말이죠. 그렇게 되니 엉망진창이 돼버려서, '그래, 이제 멋대로 하시죠'라는 느낌으로 떨어져 나왔어요."
테라다 씨는 학생시절부터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폭넓은 분야에서 시나리오를 써왔다. 또 동시에 영화 연출가로서도 여러 영화나 게임 제작회사와 함께 일을 해왔는데, 그 경험으로부터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드는 경우, 그래픽이나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돈만 있으면 그 시대의 최신 기술을 가진 크리에이터를 모으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시나리오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낡아버리는 성질의 물건이 아닙니다. 발상이라는 의미에서 시나리오 라이터는 "시대"를 읽을 필요가 있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 의뢰를 할까, 어떤 안을 채용할까 하는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측의 "읽는 능력"에 따른 거죠."
테라다씨는 현재 일본 게임 메이커는 근본적으로 그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고 있다(이에 관해서는 그의 근저 "루카스를 넘어서"에 자세히 나온다).
"물론 "읽는 능력"이라는 것은 "쓰는 능력"이 있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읽는 측도 공부를 해야만 하죠. 그렇지만 모두들 그게 귀찮아서 연출에 의지하는 쪽으로만 치우쳐버려요. 최근 외형을 과도하게 중시한 영화 "비슷한" 게임이 나오고 있는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게임은 사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플레이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콜렉션 용이 되어버린 겁니다. 엔터테인먼트가 권위에 의지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에요."
또한 게임 제작의 총괄 권한을 가진 사람이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면, 만드는 측인 크리에이터가 제멋대로 하게 놔주는 꼴이 된다고 한다. 테라다 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이라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때때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전문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거기에서 크리에이터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칠판에 영화, 애니메이션, TV드라마의 각본, 희곡집 제목을 쭉 적어놓고 하나하나 '이것을 본 사람, 읽은 사람 있습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아마도 손을 들지 않아요. 모두들 그런것들을 접해오지 않은 거죠. 저 같은 경우엔 학생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읽는 데에 열중해, 무의식적으로 작품 분석 같은 걸 계속 해왔는데 말이죠. 영화는 1년에 200편 본 적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으로 말하자면 데생 연습을 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며, 창작 활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라고 한다.
"노력과는 다릅니다. 저도 그런 기분으로 한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언제나 의식 밑바닥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이 되면 안된다'라는 마음은 있었어요. 내 강연을 멍하니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선 그런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치 혼자가 되는 것을 겁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란, 당연한 말입니다만, 고독에 대면함으로서 창조성이 발휘된다고 생각해요. 혼자가 되어서 자신의 감성과 마주한다... 라는 느낌으로 말이죠."
"FF"의 시나리오는 엉망이 될 겁니다
그런데도 "테라다 씨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다"라고 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누구누구처럼 되고 싶다"라고 하는 건 안됩니다. 그래서는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스태프가 될 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프로 게임 개발자가 저희 집을 방문합니다만, 역시 그들 중에서도 게임 이외의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선은 게임 크리에이터라는 자각, 그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근 그래픽 디자이너 중에서 2D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필로 기본적인 그림도 그리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회의 자리에서도, '모델링을 하고 색까지 입히지 않으면 어떤 모습이 될 지 모른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이해하는 능력은, 시나리오 라이터도 포함해서, 크리에이터의 기본이에요. 좀더 잘하고 못하는 차이는 있더라도,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을 형태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냥 그래픽 툴을 다룰 수 있는 정도라면, 앞으로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갈 테니까, 일거리가 없어질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10년 후, 아니 수년 후 자기가 밥을 벌어먹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겠죠."
그런 현상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항상 주위 상황을 생각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테라다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FF"의 시나리오는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을 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거나 할 일도 없겠고, 보고 싶지도 않지만, 감히 단언하겠습니다. 게임 메이커에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사람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RPG 뿐만 아니라, 게임은 시스템만으로 팔리기도 합니다만, 인간 드라마라고 하는 관점에서 봤을 경우는 이미 글러먹었습니다. 제작자 측의 오만입니다."
자신의 재능에 위기감이 없는 크리에이터
테라다 씨는 현재 켐코에서 발매 예정인 게임큐브용 소프트 "BATMAN"에 감독, 시나리오, 그림 콘티를 겸임하는 형태로 관여하고 있다. 제작 활동의 거점은, 일본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뉴욕, LA로 폭넓다.
"저쪽의 크리에이터는 분석력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스케쥴이나 예산 관리 같은 것도 크리에이터의 영역이에요. 그 점이 일본과 다릅니다. 일본의 크리에이터에게는 늦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예정보다 늦어진다는 것은 자기 분석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 일본에서는 크리에이터가 돈 얘기를 해선 안 된다는 풍조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크리에이터가 돈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관여한 작품이 우연히 히트해서 돈, 돈 하는 사이비 크리에이터도 많습니다만(웃음)."
자기 건강 관리조차 크리에이터로서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테라다 씨는 말한다. 이 의식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건 양국 간의 게임 작법의 차이가 원인입니다. 미국에서는 우선 하고 싶은 것, 만들려고 하는 것을 정한 뒤 스케줄을 짜고, 그 다음에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퀄리티까지 높여갑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크리에이터를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좋은 작품을 판다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요."
미국의 게임 작법은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우선 처음에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정합니다. 즉, 그 작품의 테마입니다. 그 다음에 오프닝까지 역산하듯이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 전체를 구성합니다. 이것은 어느 장르의 시나리오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예로 들어, 전 26화라면 26화에서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몇년 전에 유행한 애니메이션처럼 시청자를 마지막까지 배신하고서 "뒷 이야기는 극장에서"라는 식은 안되죠. 처음부터 확실한 테마를 가지고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 작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일본의 크리에이터들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위기감을 갖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결과로서 게임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 문제에 대해 테라다씨가 자기 경험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시나리오 디렉터는 많은 경우 연령적으로 40을 넘어설 즈음이 한계입니다. 그 사람이 쓸 수 있다 없다 같은 문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요구하는 측이 젊으니까 대부분 잘 맞지 않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말하자면 저는 예외중의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성격이라서 그럴려나(웃음). 그 후에는 소설가나 야한 만화 원작자로 전직하게 됩니다만, 그 모습은 비참해 보입니다. 그런 현실을 지금 개발 현장에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만큼의 위기감을 가지고 깨닫고 있을까. 저 자신이 "밝은 오타쿠"를 표방하고 있습니다만, 크리에이터 중에는 오타쿠 같은 사람이 많죠.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폭이 좁습니다. 서양 사람들처럼 여자를 꼬실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적어요. 그런 사람들이 항상 그렇고 그런 미소녀 게임을 만들어 봤자, 역시 일부의 그 계층 사람들밖에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 것을 보고 있으면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재능에 불안감을 가지지 않는 게 신기해 보일 정도입니다. 자기의 감수성을 갈고 닦지 않으면서도 태평스러울 수 있는가 하고요."
이렇게 된 것이 모두 게임 메이커의 책임만은 아니다.
"감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매스컴이 이제 막 떠오른 크리에이터에게 몰려가 추켜세우는 것도 한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테라다 씨 자신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현장에서는 잘 알려진 우수한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소프트로 승부하는 시대에 기대되는 것
최근 "게임에 질렸다"고 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질리는 것은 비슷비슷한 게임들이 수없이 나돌기 때문이다. 확실히 게임 소프트의 매력을 전하는 것은 어렵다. 하드웨어처럼 그 성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니까. 요 수년간 계속된 차세대 하드 전쟁도 내년 초에 몇 가지 신 하드 발매를 계기로 잠잠해질 것이다. 그 다음엔 소프트 전쟁에 돌입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각 소프트 메이커가 같은 수준의 표현력을 손에 넣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가운데, 어떻게 유저에게 호소할 것인가, 어떻게 개성을 발휘할 것인가. 그것이 열쇠라고 한다면, 게임 시나리오야말로 앞으로 더욱 중요성이 부각되어질 것이다. 그 때에는 분석력을 가진 크리에이터와 시나리오를 읽는 능력을 가진 게임 제작 회사만이 하드와 유저를 견인하는 타이틀을 낳게 될 것이다. (편집부)
게임비평 2001년 11, 12월호에 실린 글 중의 하나. 당시로서도 꽤나 감명깊게 읽은 글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일본 게임들의 질적 하락과 침체 문제가 대두되고, 그 대표격으로 스퀘어와 FF13이 거론되고 있는 지금 다시금 읽어보면 정말 하나하나 되새겨지는 통렬한 지적들이 아닐 수 없다.